
CHULSOO'S WORLD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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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문을 여는 순간, 당신이 상상했던 공연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.
이곳에는 무대에서 말하지 않았던 저의 생각들이 담겨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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YOUNGGAM 08 · 바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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춘앵무의 옷
공연을 준비하면서 정금희, 변상아 두 안무가와 의상과 안무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었다.
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춘앵무와 그 의상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. 나는 그때 춘앵무가 봄날의 꾀꼬리를 표현하는 춤이라는 사실을 배웠다.
봄날의 꾀꼬리.
그 말이 좋았다.
첫 장면에서 젊은 바리는 춘앵무 의상을 벗어 노년의 바리에게 덮어준다.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노년의 바리가 그 옷을 다시 젊은 바리에게 입혀준다.
벗어놓았던 옷이 다시 돌아온다.
나는 이 두 장면으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삶의 굴레를 표현하고 싶었다.
무대에서는 동일 인물의 서로 다른 시간이지만, 실제 모녀가 그 장면을 연기한다는 점에서 한 세대의 카르마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의미도 있었다.
그런데 춘앵무에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.
봄날의 꾀꼬리처럼 훨훨 날아가는 것.
나는 반복되는 굴레 속에서도 언젠가는 자유롭게 날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싶었다.
노년의 바리에게는 이제 그 삶에서 벗어나라는 기원이고, 젊은 바리에게는 같은 삶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바람이기도 하다.
카르마의 순환, 그리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염원.
나는 그 두 가지 의미를 하나의 옷에 담고 싶었다.
그런데 공연이 끝난 뒤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.
일부 관객은 그 옷을 혼례복으로 보았다. 고단한 삶을 살아온 여성이 결혼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인 것이다.
충격적이었다.
나는 춘앵무라는 옷에 담긴 의미와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순환 구조에 매료되어 있었다. 정작 그 옷이 관객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지 않았다.
그건 나의 성급함이었다.
지금도 〈바리〉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이다.